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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단상 일반

<말이 칼이 될때>에 나오는 혐오표현의 문제

by 서음인 2019. 5. 24.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의 문제를 다룬 법학자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있습니다. 부제이기도 한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를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저자가 자신을 크리스찬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더 반가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류교회는 대체로 성경의 이름을 빌어 반유대주의나 성차별 및 인종차별, 노예제도와 같은 타자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적극 옹호하는 편에 서 왔지만, 가끔 이러한 당대의 집단적 차별과 범죄에 저항하는 용감한 의인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곤 했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읽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같은 기독교인이고, 같은 법학교수고, 같은 법철학을 가르치면서 요즘 교회강연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바쁘다는 모 교수와 참 비교됩니다!


혐오표현에 관하여 대중강연을 하다보면 남혐도 문제 아닌가’, ‘개독도 혐오표현 아닌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핵심은 남혐이나 개독이라는 표현이 소수자 혐오의 경우처럼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은 대개의 경우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 ”

이주민 노동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한국 사람들은 사장님처럼 다 게으른 모양이네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한국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리는 없다. 이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하는 건 당신 자유인데, 내 눈에 띄지는 마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이성애자의 사랑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표현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혐오표현이라고 이슈화할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반면 똑같은 표현이 소수자를 향할 때눈 사회적 효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표현 자체가 차별을 조장하고, 상처를 주고, 배제와 고립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인 것이다 ........”

나도 남성이라서 남성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발언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남성에 대한 차별적, 모욕적 표현이 난무한다고 해서 내가 차별과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좀 언짢을 뿐이다. 하지만 여성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서 차별하는 것을 넘어서 일상적인 공포를 야기하기도 한다 ......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의 분노, 불안, 공포, 그리고 저항의 몸부림은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누군가가 남긴 메모, ”나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이다는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

증오범죄가 발생했다면 그 사회에는 반드시 편견과 차별이 있고 혐오표현이 난무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 없이 증오범죄가 갑자기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 어떤 표적집단에 대해 더럽고 불쾌하여 배제하고 싶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다면,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여차하면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은 편견, 혐오표현, 차별, 증오범죄 등에 하나의 맥락에서 접근한다. 편견의 발현이 표현인지 폭력인지로 갈릴 뿐, 그 원인과 배경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84쪽의 혐오의 피라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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