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진중권은 이 책을 “철학이라는 운영체계의 아이콘, 즉 개념들의 용법을 다룬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철학은 세계의 “기술 description"이 아니라 ”해석 interpretation" 이며, 절대진리라는 우상의 지위에서 내려와 세계를 해석하는 데에 쓰이는 개념들의 도구상자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한 관점에 서서 그에게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 준 몇몇 철학의 개념들을 현실과 일상의 구체적 맥락 속에 적용하면서 흥미있게 제시하고 있다.
펼쳐드는 순간 과연 진중권의 책답게 문학과 예술, 철학과 종교, 미학과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의 향연, 혹은 유희가 흥미 있게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좌파적 스탠스를 유지하면서도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다원주의적인(post-modern) 시각으로 좌, 우를 막론하고 근본주의와 엄숙주의, 그리고 지적 태만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 또한 진중권스럽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환영받던 배척받던 그가 쓰는 모든 글들은 이러한 그의 지적 성향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의 말 한마디 “이미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거짓을 행하는 ‘계몽된 허위의식’의 시대에 나 혼자 진리를 주장해봐야 어쩔 수 없다는 ‘냉소적 이성’은 결코 논증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논증이 냉소를 교육시켜 더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따라서 비판은 촉각적이어야 한다. 다다이스트들의 도발적 퍼포먼스처럼 견유주의는 충격을 통해 차가운 냉소로 얼어붙은 사유와 습속에 균열을 낸다. 냉소의 시대 철학은 장바닥으로 내려와 무례함과 뻔뻔함을 가지고 냉소를 냉소해야 한다”. 오늘날 의사당에서 계몽된 허위의식과 냉소적 이성으로 무장한 채 화장을 고쳐가며 중차대한 국사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으신 분들에게 이와 같은 무례함과 비웃음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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