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 서구 지성사의 거인 중 한 사람으로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에 맞서 ‘열린사회’로 대표되는 자유주의를 열렬히 대변했던 칼 포퍼의 대표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드디어 읽었다. 대학 시절 자극적인 제목과 멋진 겉표지에 반해 구입한 후 최근까지 서재의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누렇게 색이 바랜 후에야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일전에 서점에서 각주까지 완전히 번역한 이 책이 새 번역과 새 정장으로 다시 나온 것을 보았다.
2. 포퍼는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진리의 소유가 아니라 오류를 줄여 나가는 공동의 작업을 통한 진리에의 접근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의 길이 열려 있는 사회를 ‘열린사회’라고 부른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그 이념적 토대로 가지는 이러한 ‘열린사회’는 합리적 이성을 통한 상호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제도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닫힌사회’는 전통적 권위주의 사회나 현대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사회 형태로, (1)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역사주의와 (2) 지상에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상에 위배되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 버려야 한다는 유토피아주의가 그 이념적 토대이다.
3. 포퍼는 역사주의와 유토피아주의의 특징을 가지는 '닫힌사회'를 주장한 대표적 철학자들로 (1) 모든 변화를 타락이나 퇴보로 간주하여 불변하는 국가의 이데아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파멸하지 않는 전체주의적이고 계급적인 완전국가를 건설함으로서 부패와 악이 없는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플라톤, (2) 역사를 절대정신의 자기전개과정으로 인식하여 기존의 체제를 옹호하는 비합리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운동으로 규정함으로서 현대 파시즘의 기원이 된 헤겔, (3) 마르크스주의야말로 사회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비참의 증가를 초래하여 필연적으로 사회혁명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를 들고, 그들의 이론에 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당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탁월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예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역사주의 자체가 가지는 결함 때문이며, 마르크시즘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거시적이고 법칙적인 예언을 하려는 어떠한 역사주의의 시도도 비과학적이며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자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은 계속 살아남아야 하지만, 역사를 예측하는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열린사회로 갈 수 있는가? 저자에 의하면 이것은 (1) 최대의 추상적인 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긴급한 악을 제거하기 위한 즉각적인 노력과, (2) 제한 없는 경제적 자유를 규제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민주적 간섭주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량하려는 점진적 사회공학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닫힌 사회의 방식인, 완벽한 청사진을 기초로 모든 악을 뿌리 뽑기 위해 사회를 급진적이고 완전하게 변화시키려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게 되며 비타협적 급진주의와 전체주의로 귀결되어 결국 또 하나의 지옥을 만들 뿐이다.
5. 포퍼는 열린사회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결이 아니며 '나쁘거나 무능한 지배자가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하느냐의 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하거나 무능한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것이며, 이 제도를 잘 지키는 것이 누가 통치자가 되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권력을 쥔 사람이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는 제도적, 실질적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그 통치는 폭군적 통치이며, 이때 국민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통치자에게 저항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
6. 포퍼는 역사 자체에는 인간이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할 어떠한 의미도 없으며, 역사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역사의 囚人으로 만드는 역사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계획하면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7. 그의 생애 말년에 쓰여진 대답집인 “칼 포퍼 -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를 읽어보면 포퍼는 절대선으로서의 열린사회와 절대악으로서의 닫힌사회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체제와 단순하게 동일시하면서 일종의 편파적인 진영논리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가 공산주의나 파시즘의 해악은 몸소 체험했지만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그의 사후에 전개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뜨거운(!) 맛은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후에 등장한 하이에크類의 통제되지 않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과연 칼 포퍼의 ‘열린사회’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8. 과연 오늘의 한국사회는 열린사회인가? 우리 사회는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권력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인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어 있는가?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제도적 실질적으로 존중받고 있는가? 제한 없는 경제적 자유를 규제하는 민주적 간섭주의의 원칙이 잘 작동하고 있는가? 박정희類의 유사 파시즘 국가로 회귀하려는 권력의 야망으로부터 중세적 기독교 질서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시도에 이르기까지 ‘닫힌사회’의 망령이 도처에 배회하는 오늘, 우리에게 ‘열린사회’의 꿈은 여전히 소중하다.
2015년 11월의 리뷰 - 국정교과서와 칼 포퍼 그리고 "열린사회" 요즘 국정교과서 문제로 여기저기서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과거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기독교로 회심했다는 장신대 모 역사신학 교수가 국정교과서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서(대충 훓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운동권 내부의 노선투쟁 문서를 연상시키는 그 길고 난삽한 글을 자세히 읽을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 '회심'이라는 것이 그가 원래 품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의 기저에 깔린 사상적 토대인 '전체주의'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결국 하나의 전체주의에서 그 반대편에 위치한 극우 파시즘이라는 또 하나의 전체주의로의 전향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어 보았습니다. 이쯤에서 진리란 결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독점하거나 '국정화'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으며, 진리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의 길이 열려 있는 ‘열린사회’를 열망했던 칼 포퍼의 명저 <열린사회의 그 적들>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진리는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진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밖에 없으며, 국가든 종교든 철학이든 마르크스든 역사교과서든 어떤 영역이든 누구의 이름을 빌든간에 하나의 진리에 대한 단 하나의 '국정화된' 해석만이 모든 사람에게 강요되는 세상의 이름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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