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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선지자적 반시대성 (오스 기니스 지음, 이레서원 펴냄)

by 서음인 2016. 6. 1.

1. 개인적으로 어떤 책을 읽을 때나 리뷰를 쓸때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위대한 가톨릭 영성작가인 토머스 머튼이 한 말을 조금 바꿔 이유를 설명하자면 “내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타자(비기독교적인 세상, 타종교 혹은 다른 교파)와의 소소한 차이까지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진리를 긍정하고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며, “(그들 가운데) 지지하고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지만 할 수 있는 경우에는 먼저 진정으로 ‘예스’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내 기독교 신앙의 뿌리인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대변자 중 한 분인 오스 기니스(Os Guinness)가 쓴 책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편안함을 느끼거나 긍정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데 실패했다.


2. 저자는 오늘날 무능하고 진부하며 희화화된 기독교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신앙과 교회를 더욱 적합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한 결과라고 말한다. 기독교 세계가 적합성에 반드시 필요한 신실함을 고려하지 않고 적합성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신실성과 적합성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세대의 관습적 지혜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는 ‘선지자적 반시대성’의 용기를 회복하고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복음의 메시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저항적 사고’의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서, 현시대의 매혹적인 유혹과 미래에 대한 집착을 거스르는 ‘반시대적 인간’이 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자신들의 삶과 시대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여 시대의 징조를 읽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3.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서구문명의 핵심은 정확성과 조정가능성, 그리고 압박을 그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시간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대적 시간’은 우리의 현실을 공간이 아닌 시간을 중심으로 재조직하고, 진보를 우상화하여 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도록 부추길 뿐 아니라, 급격한 변화로 인해 모든 전통적 범주를 끊임없이 혼란스럽고 진부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분리, 절충, 순응이라는 세 가지 양태로 반응해 왔으며, 저자는 특별히 ‘개신교 자유주의의 배신자’들과 실용적 복음주의나 이머징교회와 같은 ‘수정주의자’들의 순응으로 교회가 서구에서 입지를 잃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4. 교회는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세상에 대항하도록 부름받았으며, 예수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과 부흥 및 현대성이라는 바벨론 유수로부터 단호한 해방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다수의 생각과 행동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세상의 인정을 열망하거나, 지각없이 적합성만을 추구함으로서 현대 문화의 포로가 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며, 부적응이나 초조함 실패감과 같은 신실함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과 미래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선지자적 반시대성’을 지키기 위해 현대성과 유행의 유혹에 굴복하여 성경 메시지와 제자의 삶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과거의 오류와 고전의 지혜로부터 배우려는 역사적 감각, 그리고 진정한 적합성을 찾기 위해 영원과 초월을 추구하며 시간의 구속자가 되시는 주님께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린다.

5. 이 책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두 가지만 지적하도록 한다.

(1)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첫 번째의 불편함은 ‘반성의 부재’다. 과연 저자가 추구하는 ‘진리’란 어떤 진리이며, 그가 돌아가기 원하는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것이“18세기 스코틀랜드의 상식철학을 뿌리로 삼고 근본주의 운동의 세례를 통과한 후 약간 지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진화한 20세기 초중반까지의 지극히 미국적인 기독교(마크 놀)”인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그 시대는 모든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본향' 인가? 과연 그 ‘기독교’는 과연 저자가 그렇게도 비판하는 ‘세상’과 ‘자유주의’ , 그리고 현대성에 ‘적응’ 하기 위해 분투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음주의(예를 들어 이머징 교회)만큼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와 왜곡된 현재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반성의 과정을 거쳤는가? 21세기의 다원적인 사회이자 세계역사의 변방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는 저자에게서 은연중 느껴지는 ‘좋았던 과거의 기독교 세계(christendom)’에 대한 향수와 나이브한 서구(미국) 중심주의가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2) 이렇게 작은 부피의 책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두 번째의 불편함은 ‘피상성’이다. 사실 이 책에서 그가 보여주는 논리는 유창하고 인용은 현란하며 결론은 딱히 흠잡을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일 뿐 나는 이 세련되고 매끈한 책에서 악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로날드 사이더나 짐 월리스, 존 하워드 요더가 보여줬던 고민의 치열함도, 다원화된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이웃과 공존하고 대화하면서도 기독교의 정체성과 선교적 과업 그리고 복음의 공공성을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해 레슬리 뉴비긴과 얀 밀리치 로호만, 미로슬라브 볼프가 펼쳤던 통찰의 심오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게 이 책은 아쉽게도 “표면에서만 유창하게 흐를 뿐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릴 수는 없는 얕은 강물”과 같은 책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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