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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성서학

성서의 에로티시즘 (차정식 지음, 꽃자리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1.“성서”와 “에로티시즘”이란 우리의 ‘건전한’ 신앙양식에 따르자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하늘의 희생적 사랑인 아가페도 아니고 감히 남녀간의 육체적 쾌락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가 끼어들다니 그게 어디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그러나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안더스 니그렌의 책 “아가페와 에로스” 이후 공식처럼 굳어져버린 이 두 단어의 대조적 의미구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타락한 현대문명의 원흉이요 그 상징이라는 세간의 의혹과 달리 에로스는 “인간의 현 존재를 가능케 하는 생명의 거푸집이요 재생산 구조”이자 “숨막히는 현대문명의 금기를 위반하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서 생명의 숨구멍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성서의 여러 이야기 속에 풍성하게 잠입해 있는 에로티시즘의 그림자를 추적하고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를 포함한 몇몇 관련 담론들의 도움을 받아 '에로틱한' 본문 안에 감추어진 다양한 함축 의미들을 밝혀낸다. 저자는 이 책에 담겨 있는 다양한 성찰이 인간의 생명을 육체와 영혼으로 편협하게 등급화하는 습성을 넘어서고, 아가페와 에로스의 섣부른 이분법적 구도를 극복하며, 이 땅에 기세등등하게 범람하는 각종 억압과 금기의 체계를 되짚어보고 그 위반의 모험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 저자는 ‘한 몸’의 존재를 넘어 한 몸 ‘되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그 순간 각자의 성적 한계를 벗어난 인간의 완성체로서 하나님의 창조미학을 엿보는 특권을 누리지만...오르가즘이라는 성적 만족의 정점 상태를 통과하면서 육체를 매개로 하나님의 형상에 잇닿아 있음을 체감할 뿐 그것이 이 땅에서 완성체로 지속될 수 없음을 겸손히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롯과 그 딸들의 근친상간 사건에 대해 “하나님이 불쌍하게 숨어서 사는 세 명의 부녀들에게 위반을 통해 역사하신 것은 아닌지....그 위반을 넘어 에로틱한 후세의 생명 에너지가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을 채워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사를 장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지 질문하며, 다말과 그 시아비인 유다의 통간에 대해서는 “딱딱한 제도와 법규 속에 감금된 신성화한 여성적 삶의 너울을 벗고 억압의 금기를 넘어 관계의 정의를 이룩하는 지경으로까지 뻗어가는 매우 희귀한 사례” 로 평가한다. 


그런가 하면 사사기에 나오는 용맹스러운 여전사들은 “남자와 짝을 이뤄 그 사랑의 결실로 개체 생명을 잉태하는 실낙원 이후 가부장제하의 여성적 운명과 대척점에 위치하여....뭇 생명을 두루 그 품 안에 포용하면서 혼란의 상황을 말끔히 해결하는 남녀 이전의 건강한 인간(Adam) 의 원형”이며, 아가가 추구하는 에로틱한 사랑은 “거친 타락의 현실을 가로질러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하나됨이라는 원초적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담대한 의욕”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음녀란 “체제의 생존질서를 위협하는 안팎의 적들을 공포스런 괴물로 환치시키는 주요한 피사체로....한 체제의 오류와 문제를 희생양에게 전가하여 속죄의 효과를 창출하는 희생양 제도”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에스겔서에 나오는 음녀들을 “불같은 진노와 분노가 위험한 수위에서 잔혹한 살의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쾌락으로 남편의 폭력에 맞서며....언약의 허울 뒤에 가려진 에로틱한 열정이 비록 엽기적인 포르노그래피의 수렁으로 퇴락할지언정 언약의 상투적인 원점으로 회귀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일종의  페미니스트들로 볼 수는 없는지 반문하기도 한다.

 

3. 각각의 본문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 해석에 대해서는 간혹 이견이 없지 않지만, 아가페와 에로스의 에너지가 그 본질에 있어 다르지 않으며 에로스 고유의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신앙의 이름으로 함부로 정죄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예수께서도 신앙의 본질을 거대한 억압과 금기의 체계로 변해버린 '율법'의 문자적 준수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극적 '사랑'의 실천에서 찾지 않으셨는가? 그러고보니 마치 연인과의 육체적 합일을 갈망하는 연애시를 방불케 하는 언어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중세 신비가들의 기도문이나 유명한 조각상 “聖 테레사의 환희(엑스타시 ecstasy)”에서 천사의 불화살을 맞고 마치 오르가즘(orgasm)을 연상케 하는 표정을 짓는 聖 테레사의 모습(아래 사진) 이야말로 아가페와 에로스가 동일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는 저자의 견해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 그러나 다양한 비신학적, 심지어 반신학적 담론들의 도움을 받아 표면적이고 문자적인 의미의 심층에 감추어진 새롭지만 낯선 의미의 지층들을 드러내는 저자의 성서읽기 방식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구심과 불편함에 대한 대한 내 질문은 이렇다. 그렇다면 영원토록 안전한 ' 정통’ 의 언어와 패러다임 안에 머문 채 "바빙크와 벌코프와 워필드의" 꽃밭에서 딴 꽃으로 여러 종류의 꽃다발을 만들어 그 향기에 넋을 잃고 그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것만이 신학에 허용된 유일한 과제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유연성을 잃고 도그마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신학은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살림과 사랑(eros)의 도구가 되기보다 타자를 억압하고 핍박하며 심지어는 살해하는 죽음의 본능(thanatos) 혹은 죽음애(necrophilia) 의 종으로 봉사해오지 않았던가?  

 

 

목차 

 

0. 저자 서문

1. ‘한 몸’의 존재를 넘어 한 몸 ‘되기’-아담과 하와에 대한 에로틱한 상상

2. 번식과 금기, 그 위반의 경계에서-롯과 두 딸의 막다른 골목

3. 수줍은 매음과 변신의 에로티시즘-유다와 다말의 곡진기정

4. 미인은 어떻게 건강할 수 있는가-사사기의 여성전사들과 에로틱 메커니즘

5. 이국적인 것을 향한 동경으로서의 에로스-삼손과 들릴라의 수수께끼 인연

6. 매력의 교육, 구애의 학습-룻과 나오미의 연대, 보아스와 룻의 연민

7. 벌거벗은 육체와 시선의 에로티시즘-다윗과 밧세바의 어긋난 시선

8. 침묵의 섬김과 신학적 존재론-아비삭의 부재하는 현존

9. 발견과 예찬으로서의 사랑-아가의 담대한 에로티시즘

10. 화대를 지불하는 창부의 틈새 진실-에스겔의 굴절된 에로티시즘

11. 공동체의 전위로 나선 아름다운 몸-에스더의 에로틱 정치 투쟁

12. 관능의 춤과 죽임의 에로틱-살로메의 춤에 대한 상상

13. 향유(香油)와 향유(享有)의 에로티시즘-예수와 한 여인의 신체적 교감

14. 음녀의 계보, 성녀의 족적-에로틱 여성 이미지의 두 갈래 길

15. 처녀 남장과 단발, 또는 그리움의 승화 -바울과 테클라의 인력과 척력


<성서의 에로티시즘>



<성 테레사의 환희>  엑스타시? 오르가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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