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의 「후기자유주의」 항목을 읽으면서 몇 권의 책을 통해 만났지만 좀처럼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그분’이 떠올랐습니다. 궁금증을 참으며 끝까지 읽어가다 보니 역시 예측이 틀리지는 않았군요. ‘후기자유주의’라는 안경을 쓰니 비로소 ‘그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끄럽게도 '그분'에 대해 정말 무지한 상태에서 읽고 썼었군요. ‘그분’은 누구일까요?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텍사스 시골 출신으로 전직 조적공이었던 미국 신학자입니다!
# 『신학이란 무엇인가』의 「후기자유주의」 항목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같은 철학자들의 저술에 기초한 후기자유주의는 ‘보편적 합리성’을 주장하는 전통 계몽주의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직접적 종교경험을 가정하는 자유주의를 모두 거부한다. 모든 사고와 경험은 역사와 사회를 통해 매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후기자유주의는 종교 전통들로 돌아가 그 가치들을 내적으로 차용해서는 그 위에다 신학을 세운다. 그러므로 후기자유주의는 반토대주의적(지식의 공통적인 토대라는 관점을 거부함)이며 공동체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이다.”
“후기자유주의자를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후기자유주의가 가치와 합리성 같은 보편적인 규범들을 무시함으로써 ‘게토 윤리’라든가 일종의 ‘신앙주의’ 나 ‘부족주의’에 빠져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비판에 대해 후기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는 계몽주의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보편적 언어’라든가 ‘인간 공통의 경험’ 같은 관념들은 한스 게오르그 가다며의 유명한 비유를 들어 말하면 로빈슨 크루소의 상상의 섬과 같은 허구일 뿐이라고 맞받아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후기자유주의 윤리학을 탐구한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널리 인정받는다. 도덕적 이념이나 가치들의 보편적 체계라는 계몽주의 사고를 거부하는 그는, 기독교 윤리란 역사적 공동체의 윤리적 비전을 밝히고 그러한 비전을 교회 구성원들의 삶에 실현하는 일을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윤리는 공동체 내부의 도덕 가치들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체제 내적인 성격을 지닌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공동체의 도덕적 비전을 밝히고 그 도덕적 가치들을 수용하며, 그것들을 그 공동체 내에서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제가 하우어워스의 책 『한나의 아이』를 읽고 쓴 리뷰의 내용입니다.
하우어워스는 ① 교회의 사명은 ‘자유주의적 근대성’의 소산인 관용과 다원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고유의 이야기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하고 그들의 삶과 더불어 그 이야기를 충실하게 말하는 것”이고, ② 교회를 위한 신학자들의 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근대 세계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예수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며, ③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 공동체,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해아 한다고 주장한다(덕 윤리 virtue ethics).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불 수 있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목소리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④ 윌로우크릭 교회로 대표되는 경영학을 활용한 교회 성장 전략들을 강력하게 비판했고, ⑤ 교회는 현대를 지배하는 소비주의 세계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자본주의의 희생자들과 함께 하는 낮선 거류민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⑥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라인홀트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콘스탄틴주의의 유혹에 맞서 존 요더를 따라 평화주의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머지 누구도 확실히 자기 편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면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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