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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선교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지음, 복 있는 사람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최근 선교 및 교회개혁과 관련하여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저자는 선교적 해석학이야말로 성경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며, 그간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성경신학적이고 주석적인 작업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이 책의 목적이 선교적 교회론의 성경(신학)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저자에 의하면 선교란 우선적으로 타문화권 사역이나 지리적 확장이 아니라 대조적 백성으로 살아감으로서 주변 민족들을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이끌어 오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선교가 사도행전의 13장이나 10장이 아니라 성경 이야기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리가 선교를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의 구속역사와 연관시키는 데 실패한 채 교회가 전도를 위한 특정 활동(missions) 보다 더 큰 일, 곧 창조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열방 중에 보내심 받았다는 사실 을 망각한 결과, 해외선교에는 힘썼지만 정작 우리의 사회와 문화는 선교지보다 더 세속적인 복음의 불모지로 버려지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는 레슬리 뉴비긴의 지적에 공감한다.

 

3. 따라서 저자는 교회의 본질과 관련해 선교적(missional) 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타문화사역을 위한 특정 활동들(missions) 이 아니라, 교회가 문화적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모습으로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교는 교회 정체성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명의 중심이며, 타문화 선교, 복음전도, 자비와 정의의 실현과 같은 구체적 선교적 행위(missions) 들은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missional church) 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다. 선교란 우선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doing, missions)이 아니고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반문화적 공동체가 되는 것(being, mission)이다.

 

3.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에로 부름 받고, 예수님이 사역하신 선교를 지속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상의 방식과 대조되는 매력적인 삶,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대조적 사회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교회는 서구문화를 포함한 세상의 우상 숭배적 문화와 구속적 긴장(redemptive tension)을 유지하면서 이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고난 받는 삶을 기꺼이 그러나 매력적으로 증거하는 공동체로 거듭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교회의 증거는 이와 같이 교회가 주변의 우상 숭배적 문화에 반대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신실하게 구현하는 경우에만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만일 나찌 시대의 독일 교회나 세속주의에 물든 현대교회와 같이 교회가 자신의 성경적, 선교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주변 문화의 포로로 전락한다면 교회의 증거는 그 힘을 잃고 말 것이다.

 

4. 선한 창조가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된 사실을 배경으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인간의 삶 전체를 죄의 파괴행위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선교는 다시 새롭게 되고 회복된 하늘과 땅을 가져오기 위해 세우신 그분의 장기적인 목적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선교적 정체성을 부여하셨다.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은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종말론적 목적을 수행하는 전시 백성이 되어야 했으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의 대상인 타인을 위해서 존재해야만 했다. 이것은 (1) 후방으로는 창조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적 계획과 의도를 구현하고. (2) 전방으로는 완성을 바라보며 보편적 역사적 목적지 곧 새 땅 위에 회복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삶 속에 드러내며, (3) 측방으로는 열방을 향하여 대조적 공동체가 되고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약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주변 왕국들을 모방하고 이방의 종교적 힘이 그들의 삶을 형성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선택의 선교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단지 수혜자의 특권, 구원의 신분만을 강조함으로서 결국 거룩한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한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절망적으로 악하다는 것이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이 필요했다,

 

5.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소명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자 마침내 하나님은 죄의 오염과 그 파괴적 영향력으로부터 모든 피조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가져 오시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해방을 경험하고 선교적 역할과 정체성을 다시 감당할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백성을 다시 모으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새로운 종말론적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삶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고 세상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포괄적이고 회복하시는 구원을 구현하는 공동체이며,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사역의 도래를 증거하기 위해 최종적 완성이 연기되어 있는 회집과 선교의 시대에, 제자를 만들고 열방에 죄사함을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는다.

 

6. 이제는 이와 같이 새롭게 회집된 메시야적 공동체가 열방에 빛이 되는 이스라엘의 선교를 재개한다. 이 새로운 종말론적 이스라엘은 그들의 인종적 유산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형성된 공동체로,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이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예수님의 종말론적 선교를 위해 땅끝까지 보냄을 받는다. 이 선교는 새로운 임무가 아닌 주님이 받아들이신 구약의 선교적 비전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정체성을 발견하며, 기독교 신앙의 빛나는 표지이자 매력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줌으로서 이방인돌을 그들의 공동체 안으로 이끌어 오는 구심적 차원 과, 세상의 모든 문화 가운데서 이러한 삶을 구현하기 위하여 땅끝을 자신의 지평으로 삼고 미전도 지역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가는 사명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 원심적 차원 을 가진다.

 

7. 성경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교는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에 의해 지속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이야기에 묘사되는 세상의 모습처럼 살아가도록,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는 일로 사람들을 초청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만약 교회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여 선교이기를 멈춘다면 교회는 교회를 치장하는 호칭들에 대한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8. 오늘날 한국교회는 파송 선교사만 20,000명이 넘는 세계 제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대로 하나님의 선교가 타문화 사역이나 선교사 파송에 앞서 먼저 세상의 우상숭배적 문화에 대해 도전하고, 고난 받는 삶을 기꺼이 감당하며, 세상의 방식과 대조되는 매력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이라면, 맘몬 숭배와 정치적 기득권의 포로가 된 채 열방의 빛은커녕 세상의 근심거리요 조롱거리로 전락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한국교회는 보내는 우리가 먼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가 되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being), 우리의 선교(missions)가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복음의 중거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doing)는 뉴비긴을 비롯한 서구교회의 뼈져린 반성을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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