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배(船)의 맨 앞자리는 내 차지라네.
나는 읽지도 못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책들을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네.....”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들의 배> 中 장서광(藏書狂) -
“.....바야르는 그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를 인용한다. 350만권의 장서를 가진 황실도서관의 사서는 “제가 어떻게 이 많은 책들을 모두 알 수 있는지 궁금하지요? 그것은 바로 어떤 책도 읽지 않기 때문이랍니다....바야르는 이렇게 코멘트한다. “그가 신중한 태도로 책 주변에만 머무는 것은 오히려 책들을 - 모든 책을 - 사랑해서요, 그 책들 중 어느 한 책에 너무 심혈을 기울이면 다른 책들을 소홀히 할까 두려워해서인 것이다.....”
“.....“모든 책”에 대한 이 사랑, “다른 책들”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이 두려움이 어디 그만의 것이겠는가? 불가피하기에 일상화된 이 非독서의 미덕을, 바야르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감히 변호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저자로서 나 역시 비독서의 미덕을 강조하며, 늘 도서문화의 요체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사는’ 데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바야르는 비독서가 가진 정신적 미덕을 간파했지만 아쉽게도 그 미덕의 바탕에 깔린 물질적 조건에 대한 통찰에 이르지는 못했다. 생각해 보라, 비독서가 아니라면, 즉 사람들이 꼭 읽을 책만 산다면 도서시장의 규모는 1/10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 진중권, <생각의 지도> 中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서점에 가는 일은 두렵다. 서점에서 수많은 책들 사이에 서 있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서점에 가지 않은 얼마 동안 책들이 쏟아져 나와 있다. 그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함이 발가벗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큰 마음 먹고 지갑을 털어 눈에 띠는 책들을 산다. 그러나 뿌듯한 마음은 잠시뿐 금세 다시 꺼림칙해진다. 그 책들을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놓고 꽂아두기만 한 책이 책장에 가득하지 않던가. 심지어 샀던 책을 또 사는 일도 있지 않은가. 이런 기억들이 고통을 더한다. 결국 서점에 가면 책을 사는 것도, 사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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