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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승리자 그리스도 (구스타프 아울렌 지음, 정경사 刊)

by 서음인 2016. 6. 1.

2012년의 리뷰


구프타프 아울렌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핵심은 현대 개신교 주류의 가르침인 형벌 보상에 의한 만족, 혹은 대속이 아니고 죄와 마귀에 대한 승리이며,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악의 세력들과 싸워서 그것들에 대한 승리를 획득하는 우주적 드라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의해 '고전적' 견해로 이름붙여진 이러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로서의 구속 개념이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의 지배적 견해였으며 루터 역시 이 견해를 지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스콜라주의와 개신교 정통주의에 의해 이러한 고전적 견해가 쇠퇴하고 안셀름으로부터 기인하는 만족, 혹은 대속이라는 '라틴적' 혹은 '사법적' 견해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견해 자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죄와 마귀의 권세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바로 이러한 악한 권세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기쁜 소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존 스토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IVP 刊) 에서 말한 것처럼 "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에 의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만 건지신 것이 아니라, 죽음과 마귀로부터, 나아가서 실로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건지셨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에서는 구스타프 아울렌이 옳았다." 또한 이 이론은 오늘날  영적전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적전쟁론의 이론적 교과서 격인 영적전투(조이선교회 刊) 에서 저자 티모시 워너 는 귀신론과 승리적 속죄관의 회복이 영적전쟁 이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적 속죄관의 득세는 거의 필연적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책임, 그리고 그 죄책을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아울렌의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신 채 귀신과 사탄과 악의 세력에 대해서만 진노하시는 분인 것 같다.  인간에 대해서는 죄의 노예라는 점이 강조될 뿐 공의로운 하나님께 그가 마땅히 져야 할 죄책의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간과되고 있으며, 따라서 대속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경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수많은 영적전쟁에 대한 책들과 훈련 교재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잘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부루스 밀른 그의 책 진리를 알지니(생명의 말씀사 刊) 에서 "죄란 노예 상태일 뿐 아니라 불의하고 만들고 정죄 아래 놓이게 하는 불순종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하는 도덕적 부정" 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과거의  죄책이라는 문제는 (아울렌이 주장한) '고전적' 속죄 관념으로는 정당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라고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승리자'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인간을 해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 거룩한 진노를 발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자, 그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신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시기도 하다. 또한 죄와 사망과 사탄의 세력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인간은 동시에 그의 죄악과 불순종으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결국 본회퍼의 말대로 값싼 은혜, 십자가 없는 승리만을 추구하는 천박한  신앙인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2016년의 생각


저자가 주장하는 승리주의 속죄모델은 '정의'나 '해방'을 강조하는 현대의 진보적 신학이론에서부터 피터 와그너 의 '통치신학(Kingdom now 혹은 dominion)'이나 영적전쟁론을 포함한 다양한 성령운동들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20세기 이후로 발생한 다양한 신학 및 신앙운동들에서 점점 더 선호되는 속죄이론이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뜨거운 톰 라이트 역시 "개인적 죄사함이라는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사법적 모델을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로서의 예수의 죽음이라는 더 넓은 맥락 안에 통합함" 으로서 고전적 견해쪽에 좀 더 경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정통'이라고 배워 왔던 '라틴적' 혹은 '사법적' 속죄이론에서 정서적으로 더 편안함을 느끼지만, 흥미롭게도 내가 지적 혹은 실천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던 신학이론 혹은 운동들은 '고전적' 견해에 친화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둘이 꼭 대립이 아닌 보완의 관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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